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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뚜보롱 힌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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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뚜보롱(Batu Bolong)’이라는 힌두사원에 들른 적이 있다. 시간이 있을 때 이런저런 관광지도 미리 많이 다녀봐야 하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한번도 들러보지 못한 곳이다.

게으름도 게으름이지만 ‘힌두사원이 다 그렇고 그렇지. 뻔하지 뭐.’라는 일종의 거만함 비슷한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발리에 있을 때 힌두사원은 정말 지긋지긋하게 많이 봤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왜 인지 차를 세우고 들어가서 구경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힌두사원에 대한 향수였을지도 모른다. 이곳 롬복에 온 이후로 힌두사원에 들러보적이 없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좀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아무튼 나에겐 그런 그리움이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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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어쨌든 나는 그 비좁고 초라한 사원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고요했다. 화려한 의식따위도 없었고 그저 조용히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몇몇 사람만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적어도 관광객을 의식한, 가식 비스무레 한 것이 섞여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초라했지만, 소박했고 차분했다. 비록 내 종교는 아니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종교적 엄숙함이 느껴졌다.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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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도착한 듯, 바람이 서서히 거세지고 석양과 바다가 붉게 달아 올랐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위 끝에 세워진 작은 제단 근처로 파도가 크게 넘실거렸다. 전설에 따르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들이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오래전 카스트제도에 따른 계급의 벽을 넘지 못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 때문에 사원 밑 바다로는 식인상어가 많았다고 하는데, 비장한 결심으로 자살을 택한 처녀들이 겨우 상어밥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조금 허무하고 괜히 내가 억울해진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종말이 겨우 상어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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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향냄새가 짠 바다 내음에 섞여 코 끝에서 살랑거렸다. 계단 위의 사원을 올려다보니 바다와 석양을 등지고 제사를 올리는 한 부부의 모습이 엽서 속의 풍경처럼 펼쳐졌다. 향냄새는 그 부부가 제단에 올리 공물에서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높은 계단을 타고 올라 제단을 마주하니, 그곳에 놓인 형형색색의 고운 차낭사리 틈 사이로 향이 피어올랐다. 하얀 연기는 하늘로 피어오르기도 전에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바람이 좀전보다 거세졌더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허리에 묶여있는 사룽이 풀어졌을 때였다. '이거 잃어버리면 돈 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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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그 위의 붉은 석양.
그곳에선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어떤 위대함과도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만 심장에선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아옹다옹하며 고민하던 지난 순간들이 참 하찮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곳을 나서면, 곧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음을 난 잘 알고 있다. 삶은, 그래서 참 초라하다.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석양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를 때, 저 너머로 보이는 발리의 아궁산이 검은 실루엣만을 남기며 조금씩 사라져 갈 때, 나는 또다시 훗날의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을 하나 더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텅빈 사원엔 부부가 남긴 향냄새만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고, 나는 사원을 나서며,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한다.' 는 생각을 했다.

아,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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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153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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